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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연한 세상을 숨쉬게 만들..

숨쉬기조차 힘들어지는 이 세상.. 잠시라도 맘 편히 숨 쉬고 갈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되어주길 바래요~^^ by speechless


삼국지 거꾸로보기(2) - 조조

  인재 등용의 대가, 천재적 군사적략가 - 조조
 
 


역사적으로 조조는 한나라 승상으로서 한을 통치할 당시 둔전제를 시행하고 수리시설을 정비해서 국가 경제를 재건했으며 병호제를 실시해서 많은 병력을 확보하여 외적 친입에 대비했습니다. 또한 숙욱, 곽가, 장료등의 훌륭한 인재들을 등용하여 군을 정비한 후 최대의 경쟁자인 원소를 관도에서 격파하여 승상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로써 조조는 중원통일을 달성한 것입니다. 또한 조조는 문학을 애호하고 시부에 뛰어난 실력을 보여 당시의 문학 융성을 주도하기도 합니다.
 삼국지에서 조조는 교활하고 간사한 자로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의 내용 자체가 악역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글을 읽는 사람 대부분은 조조에 대해 호의적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은 조조의 출생한 지역도 한 몫 합니다. 조조가 출생한 곳은 패국의 초군이란 곳인데 지역적으로 중국 중심에서 북방 쪽에 위치하여 중원의 인물은 아니란 것입니다. 또한 조조의 가계가 명문이긴 하지만 환관의 집안이었으므로 원소 등의 명문 집안에 대한 콤플렉스를 비롯한 반감으로 대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여 독자들에게 미움을 받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소설을 읽으면서 조조를 욕할 대목은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면 조조가 동탁 암살에 실패하여 수배중인 당시 자신의 아버지 친구인 여백사를 살해하는 과정이나 도겸이 통치하던 서주의 민중을 대학살한 사건, 유비를 신야에서부터 추적할 때 백성들을 참살하는 장면들은 반감을 일으키기 충분한 내용들이지요. 그리고 물론 이러한 내용들은 역사적으로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수들만으로 조조의 능력은 평가 절하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능력만 있으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말이죠(이명박도 뽑아줬는데요 멀;;). 위에서 말씀드린 저런 일생 일대의 중대한 실수들을 제외하면, 조조는 사살상 관용의 인물로도 그려집니다.
 조조를, 난세를 통일하려는 의지의 인물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할 경우에는 인재등용의 대가, 천재적 군사적략가 등의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나라가 당시 중국의 대부분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조조의 이 두 가지 장점이 큰 영향을 발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흔히 천하를 얻으려면 인재를 먼저 얻어야 하고, 천하를 다스리려면 인재를 잘 써야 한다고 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 조조는 매우 탁월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조조는 재능이 있는 사람을 매우 아껴 여하한 경우라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조조를 중국 역사상 위대한 인물로 만들기 충분합니다.
 조조의 인재 등용의 위대성을 구체적으로 들여보면 소설에서 쓰이지 않고 있는 역사적 인물을 배제하고라도
자신의 명 참모였던 곽가의 소행이 나빴는데 진군이 이를 여러 차례 탄핵하자 상관하지 않으면서도 진군을 높이 평가한 점, 원소 휘하의 문장가였던 진림이 조조에 대해 인신 공격성 격문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해주면서, "나를 비판하는 것은 어찌해도 상관이 없지만, 부친이나 조부에 대해서까지 욕할 게 무엇이 있나?" 하는 정도의 불평만 하고 넘긴 점, 조조가 원소의 부대를 점령했을 때 가장 먼저 원소의 기밀서류를 모두 불태워버린 점(그 동안 간첩 행위를 한 사람들이나 잠재적인 배신 행위자들을 모두 색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원소의 기밀 서류를 소각함으로써 지난 과오를 묻지 않으며, 새로이 탄생하는
정권에 충성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조조가 얼마나 큰 그릇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등입니다. 
 그리고 조조는 당대 최고의 군사전략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삼국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인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이 승리로써 중원의 지배자가 되지요). 이 관도전투는 소설에서는 중요하게 거론되지
않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삼국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제1차 중국 통일전쟁일 것입니다. 전쟁의 중요도로 따지면 적벽대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조조는 손자병법에 자신이 직접 주를 달고 제가병법을 집대성하여 전술의 교본으로 군에 반포하고, 스스로 용병의 대천재로 자부하여 모든 작전계획을 스스로 입안하였습니다.
 참고로 조조는 철저히 현실적인 사람입니다(조조는 최대의 정적이었던 원소와 비교해볼 때 매우 과단성 있는 전략가였습니다. 옛말에 망설이는 호랑이는 벌이나 전갈의 위험만도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 명마는 느린 말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원소의 우유부단함이 조조와의 경합에서 패배한 원인이 된 것입니다). 진림이 작성한 반조조(反曹操) 격문에는 조조를 발구중랑(묘를 파헤치는 사령관)이나 묘금교위(도굴대장) 등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대목에서도 조조 성격의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조조는 금은보화는 지하에 두어 썩힐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조조는 임종을 맞아 "천하가 안정되지 않으니 아직 예법을 따를 수 없다. 장례가 끝나면 모두 상복을 벗어라. 그리고 장병들은 진영을 이탈해서는 안 되고 관리들도 자리를 지켜라. 입관할 때는 평상복을 입히고 금은 보화를 넣지 말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보면 조조는 위대한 군주이자 전략가였던 것입니다.^^
 소설과는 판이한 내용들이라 조금 어리둥절 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는 소설의 내용이 아닌 역사적인 내용이니 참고해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ㅎㅎ 저는 이런 점들 때문에 조조라는 인물에 연민의 감정을 느낍니다. 참 멋지고도 멋진 인물이 아닌가 생각들구요. 이 조조에 대비되는 유비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피력해야하겠죠?? 유비는 다음 글에 말씀드리도록 할께요^^

 (참고로 이런 견해가 완성되기까지는 여러 책자들의 도움을 받았으며 그 중 일정 부분을 인용한 내용도 있으니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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